2024-04-26 13:02 (금)

[자유의 나라 미얀마] 큰 거북이 이야기(3) - 자비를 베풀면 복을 받는다네

  • 기자명 최재희 칼럼니스트 (lawan848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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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진정으로 아응애조웅이라면, 내 언니의 검이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기를 원하노라."

결투가 시작됐지만 아응애조웅은 나무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언니가 그녀를 향해 철검을 들고 온갖 공격을 해 와도, 아응애조웅은 그저 못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철검은 그녀의 몸에 닿을 때마다 우단(벨벳)처럼 부드럽게 변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칼을 맞아도 아웅애조웅의 몸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신기한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응애조웅의 손에 들렸던 나무 칼이 저절로 미끄러져 빠져나가더니 어느새 언니의 머리를 싹둑 자르는 것이 아닌가!

이로써 모든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결투가 끝나고 아응애조웅은 왕에게 어머니라도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응애조웅은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 중 하나인 ‘자비(慈悲)’를 자신의 계모와 언니에게 베풀고 있다.

어원을 통해 자비를 살펴보면 ‘자’는 일체중생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與樂]이고, ‘비’는 불행을 없애주는 것[拔苦]을 의미한다.

그녀는 자신의 계모와 언니에게 자비를 베풀었지만 계모와 언니의 업(業)을 통해 자신들의 업(業)에 상당하는 결과를 받게 된다.

결투가 끝나고 아응애조웅은 왕에게 어머니라도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왕은 의붓어머니도 역시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왕은 언니의 시체를 조각 내어 항아리에 넣어 절이라고 명령했다. 그런 다음 왕비가 손수 절인 생선젓갈이라고 하며 항아리를 의붓어머니에게 보냈다. 늙은 의붓어머니는 왕실이 하사한 특별 선물을 받자 우쭐해져서 남편을 불러 같이 맛을 보자고 했다.

그녀는 젓갈을 그릇에 떠 담으면서도 끊임없이 왕비가 된 딸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결국 참지 못한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숟가락으로 항아리를 휘젓던 계모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건 인간의 손가락 같아! 아니, 내 딸 손가락 같아!"

분노한 남편은 또다시 소리쳤다.

"쓸데 없는 말 그만하고 먹기나 하란 말이야!"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또다시 떠오른 뭔가를 보고 빽 소리를 질렀다.

"이건 인간의 발가락 같아! 아니, 내 딸 발가락 같아!"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먹기나 하라니까!"

계모는 항아리 속에 뭐가 남아 있는지 살펴보려고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항아리 바닥에서 딸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이건 내 딸 아냐? 이건 정말 내 딸이야!" 그녀는 통곡하며 울부짖었다.

남편은 엉터리 같은 말 좀 그만하라며 마구 두드려 팼다. 계모는 얻어맞으면서도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계모는 연기법(緣起法)을 통해 자신의 결과를 딸이 시체가 담긴 젓갈을 통해 받게 되었다. 자신이 지은 악업의 씨앗이 자신의 딸의 죽음으로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계모의 딸도 주인공인 아응애조응을 괴롭힌 결과로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었다.

아응애조응은 계모와 언니의 시기와 질투로 음모에 빠져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자비의 마음을 잃지 않고 계모와 언니를 공경했기 때문에 왕자와 행복한 삶을 평생 살 수 있는 결과를 얻었다.

■ 큰 거북이 이야기의 결론

'큰 거북이' 설화는 미얀마 계모형설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과 선한 주인공이 겪는 시련,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들 등은 설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미얀마 문화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불교의 가르침을 이야기에 도입하여 미얀마식 계모형설화 작품이 탄생됐다.

미얀마 사람들은 어릴 때 듣는 ‘큰 거북이’설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혜의 중요성, 윤회사상, 연기, 자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미얀마 사람들이 위의 언급된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생활 속에서 자주 언급하는 것이 자비이다. 이들은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최고의 공덕이라 생각한다.

약 135개의 소수민족이 어우러진 미얀마에서 각 민족마다 가치관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마찰이 생길 이유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타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자비의 중요성을 많이 언급한다.

이러한 이유에 기반하여 ‘큰 거북이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이 자신을 끝까지 헤치려고 한 계모와 언니에게 자비를 베풀어 복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자비의 중요성을 설화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연기(緣起)란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한자의 줄임말이다. 인간과 세계, 우주와 자연이 모두 연기적 관계로 이루어져있다. 즉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큰 거북이 이야기' 끝>

■ 필자 소개

최재희 칼럼니스트

- 동국대 불교학과 학·석사 졸업- 미얀마 양곤대 오리엔탈학과 박사과정- BBS 불교방송 라디오 <무명을 밝히고>, <뉴스와 사람들> 등 프로그램에 미얀마 전문가로 출연- 현대불교, 트래블라이프 등 다수 매체에 칼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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