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나라 미얀마] 한국에 잘못 알려진 미얀마 민주화와 쿠데타

최재희 칼럼니스트 승인 2022.09.25 22:41 | 최종 수정 2022.09.26 11:08 의견 0

[편집자 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얀마는 우리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황금의 땅'. 양곤-바간-만달레이로 이어지는 여행 코스. 석탑 그리고 인레 호수.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명상이 되고 힐링이 될 것 같은 그런 나라... 그저 막연하게 그렇게만 알려진 나라였지요.

하지만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여파가 남아있는데다, 군부 쿠데타로 정치 상황이 어지러워지면서 예전처럼 쉽게 여행하기는 어려운 나라가 돼버렸습니다.

불교 문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다양한 종교가 어우러지는 사회.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 어쩌면 정서적으로 우리와 닮은 점이 많기에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여행지였을 수 있는 미얀마. 하지만 우리는 아직 미얀마를 잘 모릅니다.

미얀마를 다시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은 분명히 올 겁니다. 미얀마에 대해 미리 알아두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최재희 칼럼니스트에게 "미얀마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단어가 좋겠느냐?"고 문의하니 곧바로 "자유"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새 기획 연재 시리즈의 제목이 정해졌습니다. "자유의 나라 미얀마".

사진=픽사베이 제공

미얀마는 우리나라에 황금의 나라, 천불천탑의 신비를 가진 나라,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 민주화 등의 키워드로 잘 알려져 있다. 1962년 시작된 군부독재가 2015년도에 종식되기까지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쿠데타 시기동안 미얀마에 외국인의 활동은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폐쇄되어 있던 미얀마 학계는 외국인의 입학과 연구가 자유롭지 못했다. 2018년도 6월, 오랜 미얀마와의 인연과 전공 능력을 운 좋게 인정받아 양곤대학교 오리엔탈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창궐하여 일시적으로 한국에 귀국하기 전까지 약 2년 동안 미얀마 민주 정부의 경제연구소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현지 사정을 알기 위해 미얀마 연구원 언니 2명과 같은 방을 쓰며 미얀마 문화를 온 몸으로 느끼고, 미얀마 경제를 움직이는 다양한 정·재계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유학 생활을 하기 이전부터 미얀마 민주정부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지만 직접 현지에서 경험한 것이 아니었기에 현지 사정과 정치적 현상에 대해 논하는 것은 매우 신중했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에는 미얀마 민주화와 쿠데타에 관해 미얀마 현지 사실과는 다르게 전해지고 있는 부분이 보였다.

사진=아웅산 수찌 페이스북 계정 캡쳐

■ 미얀마 민주화는 '아웅산 수찌 우상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오해

미얀마 민주화를 평가할 때도, 쿠데타가 일어난 원인을 파악할 때도 “아웅산 수찌의 정치력 부족”, “미얀마 국민들의 과도한 아웅산 수찌 우상화, 신격화” 등의 이야기가 반드시 언급된다. 미얀마 현지에서 미얀마 국민들과 제대로 호흡한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미얀마 독립을 이끈 아웅산 장군 딸이기 때문에 아웅산 수찌가 미얀마 국민들에게 신격화에 가까운 우상숭배를 받는 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편적으로 그의 개인사를 파악한 것이다. 아웅산 장군의 자녀라서 우상숭배를 받는다면, 미국에 있는 그의 오빠인 아웅산 우 또한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아웅산 우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사적인 삶을 포기하고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그에게 ‘미얀마 민주화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머니’라는 단어로 인해 한국에선 우상숭배, 신격화라는 프레임이 한 번 더 씌어 지기에 충분했다. 미얀마는 13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얀마라는 구심점이 생기기 위해서는 호칭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묶는다. 그래서 가족이 아니더라도 자신보다 어른인 사람에게 “삼촌” , “이모” 등의 가족 호칭을 부른다. 자신의 삶에서 존경할 만한 어른에게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단어를 써도 미얀마 사회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반적인 호칭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얀마 호칭 문화를 직접 느끼지 못하고 글로만 미얀마 정치현상을 받아들일 때 ‘아웅산 수찌 우상화’ 라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사진=아웅산 수찌 페이스북 계정 캡쳐

미얀마 현대 정치에서 민주화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미얀마 국민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미얀마 국민은 그를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다. 약 15년이 넘는 가택 연금 속에서도 영국으로 가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사적인 삶을 포기하고 미얀마 국민들을 선택한 그의 공적인 삶에 대한 존경심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쿠데타가 미얀마 민주정당인 NLD당과 아웅산 수찌 국가 고문을 위해 싸운다고만 착각한다. 하지만 미얀마국민은 지금 어느 인물이나 정당 편에 서서 싸우는 게 아니라 모두가 군부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70년 가까이 군부가 독재로 인해 망가뜨린 미얀마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군부의 독재 체계를 뿌리 뽑으려고 싸우는 것임을 우리도 이제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 Adam Jones CC BY-SA 2.0

오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NLD당의 정치력 무능함이 쿠데타의 원인이라는 오해

민주 정부가 집권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6년도였다. 약 5년 정도 밖에 안 된 민주 정부에 일 년, 삼 년이 지나서 일부 한국 전문가들이 혹독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업하기엔 군부정권이 좋았다.’ 혹은 ‘발전이 더디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밖에 하지 못하는 민주 정부 인사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등 가혹한 평가를 할 때마다 ‘너무 한국식 위주의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닐까? 미얀마 나라를 이해하며 현재를 평가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치 또한 단 하나의 현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백여 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미얀마의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서 민주 정부의 개발 정책을 세우려면 당연히 시간이 소요되고 실패 속에서 발전이 존재 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급격한 경제발전도 어쩌면 그 당시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정치와 경제 상황이 맞물려서 가능한 것이다. 미얀마에서 대한민국의 과거 발전을 생각하며 답답해하면 안 된다. 이번 쿠데타 사건 속에서도 아웅산수찌 국가고문이 이끄는 NLD당이 오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정치적 능력이 없어 헌법을 바꾸지 못하고, 군부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이 부족하여 생긴 일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글을 볼 때 마다 많이 아쉬웠다. 2017년 아웅산수찌 국가고문과 NLD당에 지속적으로 법률자문을 하고 헌법 개정을 준비하던 변호사 우 코니가 양곤국제공항에서 괴한에게 총을 맞아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미얀마 민주 정부는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꾸준히 군부가 만든 헌법을 수정할 토대를 구축하고 있었다. 민주 정부가 집권하고 나서 일 년이 지난 후 불안해진 군부는 자신들의 건재함을 민주 정부에 보여주기 위해 우 코니의 살해를 비밀리에 지시했다.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는 군부의 소행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얀마 국민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미얀마 군부는 교묘하게 불자가 아닌 무슬림 신도인 우 코니 변호사를 노렸다. 종교문제는 미얀마 군부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정치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이다. 미얀마 국민들은 자신들의 친구가 무슨 종교든 상관하지 않고 존중한다. 하지만 미얀마의 오랜 불교 역사의 전통성을 주장하며 군부만이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군부의 25% 할당제, 군사력, 군부의 기업 등 오랜 시간 동안 미얀마 사회에 뿌리내린 군부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쉽지 않았다. 미얀마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의 큰 사건이 한 번에 터지지 않는다. 여러 번의 작은 경고들이 쌓여 큰 사건이 터지는데, 미얀마 사회에서도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이 신호를 굉장히 잘 읽는다. 우 코니 변호사 사살사건은 미얀마 군부의 보이지 않는 저격 경고 중의 하나였다.

ⓒ Mil.ru CC BY-SA 4.0

미얀마 군부는 굉장히 교묘한 트릭을 국제적으로도 사용하여 민주정부를 한 번 더 흔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힝야 민족 사건’이다. 로힝야족 문제로 인해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은 민주화의 상징에서 전 세계적으로 추락하는 일이 있었다. (물론, 이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건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군부가 이 사건을 통해 쿠데타의 가능성을 민주정부에 제기 했음에만 초점을 맞추겠다.)

그가 미얀마 대통령으로 출마하지 못하는 것은 군부가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미얀마 대통령으로 출마할 수 없다.’라는 독소 조항 때문이다. 외국인과 결혼한 것을 빌미로 그의 정치를 막기 위해 군부는 노력했다. 로힝야족 사살 명령을 주도한 미얀마 군부를 향해 국제적인 입장과 함께 비난을 했다면 미얀마 쿠데타는 그 때 일어날 수 있었다는 예측을 미얀마 국민들은 한다.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단기적으로 외국에서 자신의 명성이 추락하는 것보단 미얀마 내부의 안정을 선택하며 군부의 덫을 피했다. 현재 NLD 국회의원들이 주를 이루어 구성한 미얀마 임시민주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는 로힝야족에게 합류를 촉구했으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미얀마 미래의 민주 정부를 꾸리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우리나라의 현대 정치 또한 외국에서 단면만 보고 평가하면 굉장한 오류가 발생한 경험이 있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명과도 같아 ‘정치 이론’으로만 획일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문화, 관습, 가치관등이 전체적으로 혼합된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산물이기에 우리나라식 혹은 서구식의 렌즈로만 다른 나라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미얀마를 볼 땐 미얀마 사람의 렌즈를 끼고 바라보아야 건설적인 조언과 비판이 의미가 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 또한 아웅산 수찌, 엔엘디 정당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그들을 선택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민심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미얀마 민주주의와 쿠데타를 살피기 위해서는 미얀마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최재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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