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다] (9) 부산 송도해수욕장, 화려하진 않아도 아늑하고 포근한...

박재근 승인 2021.09.29 21:20 | 최종 수정 2021.09.30 22:21 의견 0

부산 여행을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생겼다면, 아무래도 바다를 보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해운대며 광안리 같은 곳을 찾아가기엔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여행에 정답은 없다. 그 부담감, 결코 틀린 게 아니다.

인적 없는 여행지만을 찾아다닌다는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에게 지쳐, 사람을 피해 쉬러 왔는데, 여행지에서도 사람에게 시달려야 하는가"...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부산 바다를 보고 싶다면, 부산의 해변을 거닐어보고 싶다면, 그리고 바닷가에서 하루 정도 보내고 싶다면...송도해수욕장이 답이 될 수 있다.

■ 송도 해변으로 향하는 여정, 가깝고 포근하고 부담 없어 좋아라

예나 지금이나 국내여행을 위한 가장 매력적인 교통수단은 기차다.

특히 부산은 더욱 그렇다. 부산에 '놀러 가는' 여행객에겐 아무래도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리는 게 편리하다. 공항은 너무 서쪽, 고속버스터미널은 너무 북쪽에 있어서, 부산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바다까지 닿는데만 한세월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차는 부산역에 내리면 곧바로 도심이다. 바다와도 멀지 않다. "여기가 부산이구나"하는 실감이 확 난다.

부산의 해변 중, 특히 송도는 부산역에서 가깝다. 길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26번 시내버스를 타자. 길어야 10분 정도 기다리면 달려오는 이 버스. 송도까지 15~20분이면 닿는다. 해운대나 서면에 비해 멀지도, 붐비지도 않는다.

점심 무렵 기차로 부산역에 도착해 송도로 이동하면 적당하다.

기차는 무궁화호도 괜찮다. 느릿느릿 덜컹거리는 맛에 익숙해지면 창밖 풍경도 여행의 일부가 된다.(아! 만약 연인과 함께 떠나는 여정이라면 가급적 KTX나 SRT를 이용하자!)

굳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급하게 점심식사부터 할 필요는 없다. 식당에 손님이 뜸해지는 오후, 한가한 시간에 돼지국밥 한그릇 하면 된다.

부산 돼지국밥은 타 지역과 비교하면 상향 평준화 됐다. 유명한 집을 찾아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 어딜 가서 먹더라도 기본은 한다. 기본이 안되는 집이라면 진작 문을 닫았을 테니까.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마쳤다면, 아마 숙소의 체크인 시간과 대략 맞아 떨어질 것이다. 숙소에 도착한 뒤, 가방부터 내려놓자.

곧바로 해변으로 뛰쳐나가도 좋고, 바깥 경치를 보며 조금 쉬다 나가도 좋다.

송도 해변에 도착하면 느낄 수 있겠지만, 부산의 유명한 다른 해변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화려하진 않아도, 아늑하고 포근하다.

해변에 있는 호텔들만 봐도 그렇다. 가령, "부산 여행 중,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묵겠다"고 결심한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지갑 사정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터. 하지만 송도라면 가능하다. 전망과 시설이 괜찮은데도 가격이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은 호텔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가성비'다.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면, 해변가 산책을 나가보자 바닷물에 무릎정도까지 발을 적셔도 좋고, '구름 산책로'를 거닐어도 좋다. 케이블카를 타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 아늑함과 포근함 뒤엔 '스토리'가 있었네

다른 유명한 해변들보다 비교적 수수하고, 사람도 적은 송도 해변.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는 걷다 보면 느껴지는 아늑함과 포근함이 설명되지 않는다.

사실 송도해수욕장은 현존하는 해수욕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12년 착공, 1913년 7월에 개장했다니, 100살을 넘긴 지 오래다. 일제강점기 부산 남포동, 광복동 등 원도심 지역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 송도가 가장 먼저 개발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60년 넘게 '최고의 휴양지'로 명성을 떨쳤던 송도해수욕장. 하지만 1980년대 들어 그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분별하게 들어선 횟집 등 음식점들과 별장 등이 원인이었다.

난개발도 난개발이지만, 환경보호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행태가 더 큰 문제였다. 폐기물이 여과 없이 흘러나와 바다를 더럽혔다. 1990년대가 되자, 부산 사람들은 송도에 '똥도'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붙이기에 이른다. 그만큼 수질 오염이 심각했다는 얘기. 설상가상으로 2003년엔 태풍 '매미'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호사다마였을까. 태풍 '매미' 피해로 재정비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송도해수욕장은 이후 완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변을 따라 나 있던 좁은 1차선 도로는 넓게 확장됐고, 해수욕장 바닷속에 조각 작품도 여러 개 설치됐다. 해변과 거북섬을 잇던 출렁다리도 더욱 견고하게 새로 만들어졌다. 백사장을 확장하고 분수를 놓는 등, 대대적인 공원화도 이루어졌다.

대대적인 정비 덕분에, 송도는 예전의 명성을 조금씩 되찾아오고 있다. 해운대나 광안리 만큼의 인기는 되찾아오지 못했지만, 조용한 부산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바다 여행지가 됐다.

비교적 조용하고 한가한 분위기, 오래된 해수욕장이 주는 고풍스러운 기분, 망가진 해변을 되살리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 등이 아늑하고 포근한 '힐링 명소'를 만들어낸 것 아닐지.

■ 바다 위를 걸어서 거북섬으로

바다 위를 걸어본 적 있는가? 송도 해변에선 가능하다. 과거에도 가능했고, 지금은 더욱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거북섬과 해변을 연결한 다리. '구름산책로' 이야기다.

과거에 있었던 다리는 '출렁다리' 형태였다고 한다. 워낙 오래된 관광지여서였는지, 송도 해변은 한 때 의외로 연인과 신혼부부들의 여행지로도 유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 다리를 흔들어 출렁거리게 하는 건 필수 코스였을 것이다.

이제는 다리 위에서 발을 굴러 흔들거리게 하는 장난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더욱 안전하고 편안하게 바다 위를 걸을 수 있게 됐다.

거북섬에 도착하면 '인어'처럼 생긴 동상이 눈에 띌 것이다. 인어가 아니다. '로렐라이'며 '세이렌' 같은 서양 전설 속의 캐릭터도 아니다. 거북섬의 전설을 동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송도에 살던 한 어부. 하루는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 동굴로 몸을 피했는데, 동굴엔 한 여인이 부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알고보니 용왕의 딸이었고 괴물과 싸우다가 크게 다쳤다나.

어부는 약초를 구해 '여인'을 정성껏 치료해줬고, 이 과정에서 '여인'과 눈이 맞았다.

어부와 '여인'은 용왕에게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다. 용왕은 분노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결국 결혼을 허락하고 '진짜 인간'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달의 기운을 받아야 한다. 1000일 동안 기도하되, 햇빛을 보지 말아라"

'여인'은 동굴에서 정성스레 기도하지만, 999일째 되던 날, 갑자기 나타난 바다 괴물에 쫓겨 그만 햇빛을 보고 만다. '여인'은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용인 모습이 돼 버렸다. 뒤늦게 달려온 어부가 괴물에게 맞서지만, 결국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용왕은 어부를 거북바위로 다시 태어나게 해 영원한 생명을 주었고, 둘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이 곳을 찾는 남녀의 사랑을 이루게 해 준다나...

부산 서부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인에게 이 전설에 대해 물어보니 모른단다. 알고보니 서구청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창작한' 이야기라나. 살짝 김이 새지만, 웃어넘기기로 한다. 후손들에게는 이 역시 전설로 전해질테니...

■ 바다 위 케이블카, 송도의 흥망성쇠 함께 하고...

송도해상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위를 건너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아무래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은 다를 터. 여유가 된다면, 케이블카 하차지점으로부터 이어지는 암남공원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이 케이블카,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됐다. 이미 1964년에 만들어져 영업하던 관광시설이다. 다만, 오염으로 인한 송도 해변의 쇠락, 그리고 태풍 셀마로 인한 시설 피해 등을 견디지 못한 채 1980년대 후반 운행을 중단했다. 그대로 방치되다가 2002년에 철거됐다.

그러다가 송도해변의 대대적인 재정비가 진행되고, 다시 인기를 끌게 되자, 2017년 다시 가설돼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나름 송도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는, '사연 있는' 시설인 셈이다.

■ 송도해수욕장을 찾은 그대에게...소소한 팁 몇 가지

해변 산책을 충분히 즐겼다면, 그리고 날은 어두워졌는데 배가 출출해졌다면 저녁식사 메뉴를 고를 시간이다.

"그래도 부산까지 왔는데 회는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글쎄...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음식을 배달 시켜, 호텔방에서 야경을 보면서 먹는 편을 추천한다.

부산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나 ㅇㅇ해수욕장 근처 숙소에 묵을 예정인데, 그 동네 횟집 좀 추천해줄 수 있어?" 자신있게 대답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부산 사람들은 굳이 일상적으로 해변에서 회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그 비용을, 바다 전망이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숙소에 투자하는 게 현명해 보인다.

야간엔 웬만하면 물에 들어가지 말자. 부산항(북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항로와 겹치기에 매우 위험하다. 자칫하면 '배에 치이는'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다음날은 자갈치 시장이며 남포동,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이런 곳들 가운데 여행 코스를 고르면 된다.

만약,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계획했다 하더라도, 오후 느즈막히 기차를 탈 예정이라면 얼마든지 이 모든 곳들을 다 둘러볼 수 있다. 송도와 부산역 모두에서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감이 오지 않는가? 송도와 그 일대를 둘러보는 코스는 1박 2일이라는 짧은 계획으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부산 바다 여행코스라는 점 말이다. 어쩌면 나홀로 뚜벅이 여행자에게 더 어울릴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과 비용이 모두 부담스럽다면... 주말 1박 2일동안 떠나보자. 완행 열차 타고, 부산 송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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