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박석캠핑장에서의 '캔맥주 데이트'...지친 아내를 위한 소소한 위로

배규범 여행작가 승인 2021.04.06 00:40 | 최종 수정 2021.04.06 10:17 의견 1

■ 코로나로 지친 아내를 위한 계획...모닥불 옆 '캔맥주 데이트'

역병과의 싸움으로 모두가 지쳐있는 가운데에도, 봄은 어김 없이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놈의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생긴 우울감, 이른바 '코로나 블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기온이 평소보다 낮았을 뿐이었던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난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아내 역시 그런 듯 했다. 지쳐보이는 모습이 부쩍 눈에 띄었다. 하긴, 아이들은 커 가지,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도 만나기 어렵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게 자연의 이치다. 따뜻한 바람이 뺨을 간지럽히고, 눈앞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이제는 때가 됐다. 마음 속으로만 구상하고 있던, 모닥불 옆 '캔맥주 데이트'를 실행에 옮길 때가 된 것이다.

미리 준비해두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쓰지 못했던 캠핑 장비를 꺼내본다. 녹슬거나 잃어버린 부품은 없는지 점검하는 그 순간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가 그랬던가. 떠나기 전 설렘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됐다고. 나 역시 설렘 속에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아내에게 '캠핑을 가자'고 하니 싫어하진 않는 분위기다. 하긴,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느낀다는 의미도 크니깐. ‘코로나’, ‘겨울’, ‘감기’, ‘미세먼지’, ‘귀찮음’ 이라는 핑계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었던 아이들에게 미안하긴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 바깥 구경을 시켜줄 수 있지 않은가. 구실은 충분했다.

벼르고 벼르던 출발 날짜가 됐다. 이 날은 금요일. 들뜬 마음에 평소보다 다소 일찍 퇴근했다. '정시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오후 5시. 하지만 이 날은 외근 일정을 마무리한 뒤, 곧바로 퇴근길에 올랐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태워오고, 집에서 다시 짐을 챙기니 어느새 4시 반을 훌쩍 넘겼다. 아이고, 차라리 그냥 정시퇴근할 걸 그랬나... 그래도 몇십분이나마 일찍 떠나는 게 어딘가. 이제 출발이다!

"자기야, 이거 챙겼지? 저건 확실히 준비했어?"

캠핑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계속 아내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 귀찮아하는 듯하던 아내의 표정이 돌연 바뀐다.

"앗, 미안! 수저를 깜빡했네... 헤헤!"

... 뭐 어떤가. 근처 편의점에 차를 세우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뭔가 간단한 국물 요리도 필요할 것 같다. 또다시 깜빡하기 전에, 라면도 한 봉지 샀다.

곤히 잠든 18개월 아들녀석. 아내와 6살 딸아이가 낱말 퀴즈 맞추기를 하며 깔깔대는 모습... 그림과도 같은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그렇게 30분을 달려 박석캠핑장에 도착했다.

박석캠핑장 입구
박석캠핑장 화장실
박석 캠프의 안내실 및 매점

■ 맑은 공기, 샘솟는 용기, 텐트와의 싸움...

박석캠핌장은 경기 파주 탄현면 박석농원 내에 마련돼 있다. 깔끔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박석캠핑장은 금,토,일요일과 휴일만 운영하고, 반려동물과 예약인 외 방문객은 입장이 제한돼 있다. 그만큼 조용하고 캠핑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 아이들 때문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매점은 오전 11시 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지만, 급하게 이용할 경우 근처에 거주하는 운영자가 곧바로 달려온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예약한 곳은 과수원동. 딱 4개의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미 한 가족은 먼저 와서 텐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 가족과 인사를 나눈 뒤, 우리도 짐을 내려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해 캠핑을 즐기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박석농원 과수원동 사이트

자연속, 숲속이라는 배경 때문일까, 혹은 맑은 공기 때문일까? 캠핑장에 오면 뭔가 사람이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든다.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친절해 지는 듯 하다.

사실 같은 아파트 주민을 만나더라도 어색한 인사만 주고 받게 되지 않는가. 하지만, 캠핑을 오니 먼저 용기내 큰소리로 인사하고, 과일을 비롯한 먹을거리를 옆 텐트의 '이웃'들에게 먼저 권하게 된다.

맑은 공기도, 용기도 다 좋은데, 아이고... 텐트라는 놈을 처음 설치해 보려니 이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도와주겠다는 아내의 말에 "대한민국 육군 출신을 뭘로 보고! 애들이랑 놀고 있어!"라고 큰소리는 쳐 놨건만... 유효기간은 5분이었다. 여기 폴대를 잡으려하면 저기 폴대가 쓰러지고, 여기를 끼우려고 하면 저기가 빠지고... 보다 못한 아내는 어느 새 조용히 다가와 날 돕고 있었다. ‘괜찮은데..’라고 작은 목소리를 내 보지만, 나도 아내도 안다. 마음에 없는 소리라는 걸...

텐트속 아내와 둘째(아들)

40분이 흘렀다. 텐트가 완성됐다. 그래. 첫 시도 치고는 성공적이다.

성공을 자축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 모닥불, 캔맥주, 사랑하는 아내... 일상 대화마저 달콤하다

저녁식사는 2종류를 준비했다. 아이들 것과 어른들 것. 아이들에게는 즉석밥과 반조리된 갈비찜을 준비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일까. 별다른 반찬이 없는데도 아이들은 잘 먹었다. 준비한 스크린패드를 이용해서 '핑크퐁' 영상을 보여주고, 본격적으로 어른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 해본다.

어른들용 식사라고 뭐 특별한건 없다. 그저 삼겹살 좀 굽고, 야채와 밥을 곁들이는 게 전부다.

배를 좀 채우고 나니 이제 좀 여유로워졌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렸다. 아내와 나는 '작전'에 들어갔다. 아이들을 먼저 재우고, 모닥불과 함께하는 둘 만의 '캔맥주 데이트'를 즐기자는 것.

텐트에 아이들을 눕히고 자장가를 불러줬건만, 쉽사리 잡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다. 녀석들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하는 건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수다에 수다가 끊임 없이 이어지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아빠는 엄마랑 맥주 데이트를 할 예정이란다. 얘들아 얼른 코~ 자렴!

아내와 함께 조용히 텐트 밖을 나와보니, '이웃'들도 벌써 잠이 든 듯 사방이 고요하다.

우리는 준비해간 화롯대에 조용히 불을 피우고 둘이서 불 옆에 앉아 '캔맥주 데이트'를 즐겼다. 첫째 어린이집 이야기, 둘째가 사고친 이야기... 집에서 했다면 일상이었겠지만,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 조차도 낭만적인 속삭임이 됐다.

아내와의 '맥주 데이트'... 지금 생각해도 설렌다.

장작향기, 새벽공기의 습함, 흙내음... 당시 화롯대 옆에서 느꼈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긴 어렵겠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하면 이 정도다.

별 생각 없이 불 옆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그저 좋았다.

새벽까지 아내와 함께 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12시를 넘긴 시간. 집에서라면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 아내는 지쳐 쓰러졌을 터. 하지만 캠핑의 낭만 덕분이었을까. 피곤한 줄도 몰랐다.

■ 비 때문에 일찍 철수했지만...그래도 성공적인 '첫 캠핑'

쉽사리 일어나지 못한 나와 달리,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이들과 산책을 다녀왔단다.(역시 어머니는 강하다...)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서 너무 좋았다며 행복해하는 아내의 표정에 ‘캠핑 오길 잘했구나’ 생각할 무렵...

앗! 이 소리는... 빗소리였다. 오후부터 온다던 비는 예상보다 이른, 오전 9시부터 내리고 있었다.

비오는 날 아침. 예고 없던 비 때문에 텐트가 젖어버렸다.

허겁지겁 일어나 양치만 했다. 아내는 아이들 밥을 먹이고, 나는 텐트부터 걷었다.

이번 캠핑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1박2일만 할 예정이었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점점 거세지고, 어느새 타프 위로 비가 고이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

아내는 아이들 밥 먹이느라 도와줄 수 없는 입장. 혼자 쩔쩔매며 텐트를 걷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을 서둘러 차에 태우고,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줬다(아이들에게 그런 미디어를 보여주긴 싫지만, 그런 게 없다면 우리 부부는 뭔가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못 냈으리라).

쉴 새 없이 정리하고, 차에 욱여넣다 보니, 텐트를 칠 때 보다 짧은 시간에 철수할 수 있었다.

캠핑의 마무리는 처음 시작보다 더 힘들다.

이번 캠핑... 우리 가족의 첫 캠핑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성공적'이라는 기준이 뭐냐고? 사랑하는 아내와 모닥불 옆에서 캔맥주 데이트를 즐기겠다는 내 계획은 완벽하게 실행됐다. 새 소리를 들은 아내의 표정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덤으로 아이들도 모처럼 밖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 아닌가.

다시 찾아온 봄날, 우리는 그렇게 봄내음과 함께 주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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