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9:30 (목)

[경주 백과사전] 포석정, 망국의 설움에 묻힌 신라 왕실의 미

  • 기자명 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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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조선 왕조 출범 후 낙향 은거하던 야은 길재 선생이 옛 고려의 도읍 송도를 찾아온 감회를 읊은 이 시조는 ‘회고가’로 불린다.

포석정에서 드는 첫 느낌은 망국의 쓸쓸함이다.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연회를 하던 중 후백제의 견훤의 공격을 받고 자살한 역사 때문이다.

하지만 포석정이 경애왕때 만든 것도 아니고, 그가 술과 연회로 나라를 말아먹은 것도 아니다.

포석정이 당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자료가 발견된 것은 흥미롭다.

◆ 흥청망청 술판의 역사가 아니라고?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서술하고 있다.

어쩌면 신라 말 왕과 귀족들의 유흥장소로만 기억된 것은 학창시절 역사교과서가 던져준 기억이 지배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해보면 흥청망청 유흥을 누가 야외에서 술잔을 띄우면서 하는가.

삼국사기가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다보니 신라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이 일방적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백제의 멸망을 두고도 '의자왕이 궁인과 함께 음황탐락하여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 라고 기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석정의 구불구불한 물길을 따라 술잔을 띄워 순배잔을 돌리는 놀이를 유상곡수라고 한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를 통해 “ 중국 진나라 왕희지가 쓴 ‘난정기’ 라는 글에 3월 삼짓날에 흐르는 물에 몸을 담궈 나쁜 기운을 씻어 내는 의식을 치르면서 유상곡수 놀이를 한 기록이 있다. 포석정에서의 유상곡수도 사악한 기운을 씻어 내는 제의적인 의식과 관련이 있을 것” 이라고 쓰고 있다.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보니 여러채의 사당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 남겨진 것은 포석정 하나. 그리고 주변에 조성된 짧은 산책로 뿐이다.

사전지식 없이 포석정에 들르면 “이게 다야?” 하는 의문이 드는 걸 어쩔수가 없다.

역사는 늘 강자의 기록이다.

포석정은 적어도 현존하는 신라 왕실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유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TRAVEL TIP = 경주역과 터미널에서 500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경주를 제대로 볼려면 봄날씨가 좋아질때쯤 스쿠터나 차를 렌트 하길 추천한다.

서울 연신내 지하철 역과 연계된 '물빛 공원'은 포석정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비교해보면 꽤나 재미있다.

최초 작성 2016. 3. 17.복구 2020.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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