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1:33 (목)

제주 산굼부리, 억새는 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 기자명 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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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억새를 찾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어디에나 있는 게 억새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휴대폰을 열어 '억새'를 검색해보라.

한달음에 달려갈 만한 거리에 억새가 있다.

심지어 한강에도 있다.

구도를 잘 잡아 사진을 찍으면, 서울인지 교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도 가을이 오면 굳이 억새를 찾아나서는건 집단적으로 모였을때 발생하는 시너지 때문이다.

그 특유의 수수하면서 거친 이미지는 대규모로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야 제맛이다.

단풍에 물든 산이 화려한 서양화라면, 억새가 날리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묵으로 선을 긋는 동양화다.

억새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저절로 떠오르는 억새 군락지는 두 곳이다.

하나는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코로나로 더욱 더 저질이 되어 버린 체력 탓에, 다시 그 곳을 오를 수 있을 지 걱정부터 앞선다.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억새는 민둥산에서 바라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무가 없이 억새만 자라서 민둥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바로 그 억새를 보기 위해 가을이면 수많은 등산객이 몰려들고, 인근 기차역의 이름이 '민둥산역'으로 정해질 정도니, 명물은 명물이다.

또하나의 억새 명소는 제주 산굼부리다.

산굼부리의 억새는 자연 그대로가 아닌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심은 것.

하지만 제주의 삼다중 하나인 바람을 만나면 춤추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폐부 깊숙히 들어오는 제주 바람은 억새마저 뒤흔들어 시각적인 후련함마저 완성한다.

늦가을과 겨울 산굼부리 산책이 머리를 정화시키는 듯한 느낌은 순전히 바람과 억새의 합작품이다.

10년전, 20년전을 떠올려도 산굼부리의 억새는 항상 춤추며 누워 있었다.

산굼부리의 분화구를 한 바퀴 도는 것, 전혀 힘들지 않다.

그래서 가족여행지로도 적당하다.

제주 유명 관광지로서 무릎 좋지 않은 어르신들 모시기에는 산굼부리와 군산오름이 아마도 제일 좋지 않나 싶다.

한가지 아쉬운 건 입장료.

정갈한 관리를 생각해보면 아깝지 않고, 한 번 다녀가고 말 것이면 기꺼이 지불할 만한 금액이다.

하지만 가을마다 찾고 싶은 이에겐 그렇지 않다.

기억 속 산굼부리가 10여년 단위로 이어지는 걸 보면, 입장료가 '굳이 또 돈 내고 들어 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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