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5:22 (금)

[박재근의 행여나] 제주도 접짝뼈국, 절대 그런 음식 아닙니다!

  • 기자명 박재근 (withjkon@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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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라이프=박재근] 여행이라는 개념에는 볼거리, 즐길거리와 함께 먹을거리도 포함돼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을 먹어본다는 건, 단순히 혀를 즐겁게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 지역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왜 이 음식이 이 지역의 명소가 됐는지를 알게 된다는 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업무 목적이든, 관광 및 휴양 목적이든 제주도를 방문하면 꼭 찾는 음식점이 있었다. 오직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제주라는 지역을 대변하는 먹을거리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제주에 살던 지인이 추천한 식당이다. 돼지뼈가 걸쭉하고 구수한 국물과 함께 나오는 제주 향토음식 '접짝뼈국'을 오래전부터 전문적으로 팔아온 향토음식점이었다.

갈치젓과 멸치젓, 두 가지 젓갈을 상추에 싸면, 밥 한공기 뚝딱 비울 수 있는 주인 할머니의 손맛이 좋았고, 밥이든 국이든 얼마든지 더 주는 그 푸짐함이 좋았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오후 4시면 문을 닫아버리는 영업시간은 다소 아쉬웠지만, 이 역시 제주 원주민들의 생활 패턴에 맞췄겠거니 생각하면 이해가 됐다. 그 무엇보다도, 이른바 '인스타 맛집'들 마냥 겉멋 들지 않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우직함이 좋았다.

그랬던 그 식당이 언제부턴가 변했다. 제공되는 젓갈의 수가 줄었고, 영업시간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로 줄었다. 접짝뼈국 외에 갈치국 같은 다른 메뉴들은 아예 없애버렸다. 양이 많은 것처럼 여러 그릇에 나눠담아 음식을 제공하긴 하지만, 절대적인 양은 오히려 줄었다. 그런데도 밥값은 비싸졌다.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올랐다. 웬지 식당 앞에 대기 인원이 많아졌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식당 내 테이블도 확 줄였다(일부러 줄을 세우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의심되는 대목이다). 식당을 지키고 있던 주인 할머니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고, 서른 남짓으로 보이는 청년이 대신 눈에 띄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경영주가 바뀌면 경영방침도 바뀔 수 있지...라고 생각하던 순간, 귀를 의심케하는 말이 들렸다.

"자, 자, 저희 음식은 금방금방 나옵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나오니까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는 음식을 대충대충 성의 없이 만들거든요!"

새 주인으로 보이는 30대 청년이 옆 테이블 손님에게 음식을 차려주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처음에는 반어법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음식에 자신이 있기에 꺼낼 수 있는 농담이리라 여겼다.

아! 1절만 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식당 바깥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도, 청년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손님들의 표정이 어떤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자신의 발언이 재미와 재치를 모두 갖추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농담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즐거워야 성립하는 것을...

접짝뼈국은 전형적인 '슬로우 푸드'다. 손님에게 차려내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지 몰라도, 손님이 먹어치우는 시간은 금방일지 몰라도(뜨거운 수프 또는 국물 느낌의 요리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금방 먹어치운다는 게 쉽지 않다), 만드는 건 결코 대충대충 쉽게 되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손질한다는 것, 그 돼지고기를 이용해 구수하고도 걸쭉한 국물을 우려낸다는 것... '인스턴트'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청년의 경영방침은 무엇이었을까? 식당 내외부 곳곳에는 '접짝거세'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접짝뼈국'이라는 단어와 '박혁거세'라는 단어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란다. '여기야말로 접짝뼈국의 원조입니다'라는 의미를 적극 드러내고 싶었던 의도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성의 없이, 대충대충'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반대로, '빠른 속도로 제공된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다면, '원조'를 연상케하는 단어는 쓰지 말았어야 했다.

경영 방침 이외에도 여러 물음이 꼬리를 문다. 예전에 가게를 지키고 있었던 주인 할머니와, 이 청년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 청년은 접짝뼈국이라는 음식을 단 한 번이라도 만들어본 적이 있을까? 이 청년에게 접짝뼈국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결정적인 물음 하나 더. 나는 앞으로 이 식당을 다시 찾게 될까? 이 경험이 워낙 불쾌했던 탓에, 당분간은 찾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집을 찾아 청년을 만나게 되면, 딱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다. "귀하가 어떻게 생각할 진 몰라도, 접짝뼈국은 절대 그런 음식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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