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묘' 장릉, 강원도 영월에 왕릉이 있는 이유

양혁진 승인 2022.08.14 00:03 | 최종 수정 2022.08.14 00:12 의견 0

"이 동네는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동네. 지금도 있지만 500년 전에도 있었을 터.

'오지'야 많겠지만 '오지 중에서도 오지'를 정의하기 위한 기준은 무엇일까? 지금이면 '서울에서 얼마나 걸리는가'를 꼽을 터. 이 기준이 적용되기야 그 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아마 한 가지 기준이 더 있지 않았나 싶다. 바로 '폐위된 왕의 유배지' 말이다.

예컨대 연산군은 강화도, 광해군은 제주도에 유배됐었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1시간이면 닿는 관광지(강화도는 교통 정체만 없다면 자동차로, 제주도는 비행기로 각각 1시간이면 닿으니까!)이며,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두 섬이다. 하지만 당시의 교통환경을 생각해보면 두 곳이 얼마나 오지였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종의 경우는 강원도 영월이다. 심지어 세상을 뜬 후에도 영월에 묻혔다.

돌이켜보면 단종을 제외한 조선시대 왕릉은 모두 서울과 경기도에 있다. 심지어 연산군과 광해군도 묘지는 수도권에 있다. 오직 단종만 머나먼 강원도에 묻힌 것이다.

'죽은 권력'인 그를 여전히 따르던 신하와 백성들, 그리고 그 모습이 눈엣가시였던 '살아있는 권력'. 결국 그가 짧디 짧은 인생에서 그나마 말년을 보내야만 했던 곳은 영월이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어쩌면 영월이야말로 그시절 오지 중의 오지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도 영월로 항햐는 간선도로인 38번 국도가 지금의 모습으로 확장된 게 2004년이니,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과거의 영월은 산넘고 물건너 굽이굽이 가야 하는 첩첩산중 산골동네였다.

벽지 중의 벽지에 감금돼, 잊혀질 뻔 했던 단종. 하지만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밀려난 권력'의 상징처럼 전해지는 건, 우선 단종을 생전에 돌보고, 사후에도 버려진 시신을 수습해 몰래 장례를 치른 엄흥도의 공이 클 것이다.

지방 아전이었던 엄흥도는 서슬퍼런 세조의 눈읖 피해서 장사를 지냈고, 훗날 정승급의 관직을 추증받을 만큼 공을 인정받았다.

엄흥도 말고도 그 공을 치하한다면, 그 후로도 수백년을 영월에서 살아온 주민들일 것이다.

1698년 복권되기 전, 장릉은 봉분도 없는 평평한 맨땅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고 보존된 것은 지역 사람들이 암암리에 알고 보존해온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으리라.

지금 장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유산을 만든 건 엄흥도이지만, 지켜온 건 대대손손 영월에서 살아온 주민들인 셈이다.

입구에 역사관이 있고,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길을 잠깐 걸으면 능이 보인다.

모든 왕릉이 그러하듯 장릉도 강남의 선릉과 비교해서 크게 다른 부분은 없다.

특이점이라면 무인석이 없다는 정도.

세조가 무인 세력을 등에 업고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이다.

영월을 흐르는 동강 유역. 장릉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단종이 유배됐던 청령포가 있다.

단종의 흔적을 찾아 영월을 답사하고 있다면, 이 두 곳은 '세트 메뉴'처럼 함께 둘러봐야 할 것이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인 곳이니, '살아있는 권력'이었던 세조는 오지였던 영월에서도 단종을 한번 더 가둔 셈이다.

Travel Tip : 장릉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뤄지면 좋고, 이뤄지지 않아도 손해볼 건 없지 않은가.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한 번 빌어보자.

저작권자 ⓒ Travel Lif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