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5:22 (금)

청송 송소 고택, 무인 장터에서 느낀 안도감

  • 기자명 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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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은 경북 내륙의 대표적인 오지 중 하나로 이른바 'BYC(봉화, 영양, 청송)'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역 명에서 벌써 소나무가 자동으로 연상되는데, 실제로도 군 면적의 대부분이 소나무로 이루어진 임야다. 따라서 이곳에 발을 디디면 설령 그곳이 군 중심지건 어디건 간에 사방팔방 펼쳐지는 산과 나무와 숲을 쳐다보게 된다.'BYC' 중에서 청송은 봉화와 영양에 비해 교통이 훨씬 좋아졌다. 적어도 대구 기준으로 보자면 이제 청송은 더 이상 떠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곳이 아니다. 한 시간 거리의 경주보다 아주 조금 더 먼 주말 나들이 여행지가 돼간다.

예전엔 청송이 육지에 있는 섬과 같았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서, 다시 굽이굽이 돌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10여 년마다 한 번씩 청송에 들렀는데, 강산이 변한다는 걸 실감한다. 언젠간 저런 불명예스런 별칭으로 불린 것조차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가기 쉬워져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울릉도에 공항이 생기면 그곳이 더 이상 신비의 섬일까.

청송을 찾는 길이 이렇게나 쉬워졌는데 뭔가 낯설고 아쉽다. 이런 멍한 느낌이 문득 문득 청송 곳곳에서 무뎌진 기억을 파고 든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어찌 여행자의 이런 한낱 감상을 따라가겠는가. 현지 주민들에게 욕 얻어먹을 얘기는 그만해야겠다.

청송 심씨 송소 고택은 경주의 최 부잣집 고택과 더불어 영남 부호 가문 저택을 상징한다. 단순한 부자가 아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으로 칭송 받아 마땅하다.

고택 자체만 보면 서울의 한옥 마을이나 경주, 이곳이나 다를 바가 있겠는가.

심씨 고택이 다른 점은 배산임수를 바탕으로 한 풍경에 있다. 고택이 풍경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소리 없이 자리 잡고 앉은 것 같다.

부엌이나 곳간 어느 곳에서건 그 옛날 사람들이 툭 튀어 나와, 사랑방으로 안내를 해도 전혀 놀랄 것 같지가 않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받은 느낌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건 고택 입구에 놓여 진 소쿠리에 담긴 무인 장터다.

동네 사람들이 키운 각종 채소와 과일이 바구니를 채우고 있다. 그 옆엔 부끄러움도 없이 속을 드러낸 지폐들도 보인다. 방문객들이 물건을 사고 놓고 간 것이리라.

시골의 길거리 무인 장터를 한두 번 본 것은 아니지만, 청송 심씨 고택은 무엇보다 이런 이미지가 딱 맞아 떨어진다. 이 느낌이 안도감인가. 아니, 안도감이 이런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가 맞는가.

설명하기 어려운 여운이 남는 곳이다.

송소 고택을 찾기 위해 청송을 찾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청송을 찾는다면 이곳을 지나치지 말았으면 한다.

아파트 집 구경하듯 휙 둘러보고 떠나지 말고, 마당 이곳저곳을 거닐며 산과 들도 한번 쳐다보았으면 한다.

[편집자 주]

이 기사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 9. 20. 작성된 글이며, 서비스 개편 과정에서 누락된 것을 2022. 8. 12. 복구한 것입니다.

과거에 떠났던 여행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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