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품었던 송해...모두가 사랑하는 송해길

선유랑 승인 2022.06.27 23:47 | 최종 수정 2022.06.27 23:46 의견 0

[속보]현역 최고령 MC 송해 별세...향년 95세

덜커덕! 가슴이 내려 앉는 소리였다.

그동안 인터넷에서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송해'가 포함되면 네티즌이 긴장한다"는 식의 우스갯소리가 돌곤 했다. "에이, 그 정정한 '송해형'한테 무슨 일이 생기기야 하겠어?"라며, 말 그대로 '농담' 취급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22년 6월 8일의 뉴스는 농담이 아니라 실제상황이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100살은 채우시리라 생각했건만...

송해 선생의 부고 소식은, 여타 연예인들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단순히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며 유명한 양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송 선생을 직접 마주친 적이 있었다. 송 선생은 당연히 기억 못하겠지만.

2000년대 초반이었다.

거의 막차 시간이 다 될 무렵,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종로3가역으로 향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듯 비틀비틀 걷는 노인이 시선에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 자세히 보니 일요일마다 TV에서 볼 수 있던 바로 '그 분'을 매우 닮았다.

"설마 '그 분'이 지하철로 이동하신다고? 하지만 지하철로 이동할 정도로 소탈하신 분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네야 하나? 그런데 막상 인사하고 나니 '저 아닌데요'와 같은 반응이면 머쓱해질 것 아닌가?"

혼자 고민하던 사이, '그 분'은 어느 새 내 시선 밖으로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생각하던 바로 그 송해 선생이 맞았다.

종로3가 낙원동 일대는 그야말로 선생의 활동 무대였다.

약주를 즐기던 그가 낙원동에서 종로3가역까지 걸어서 지하철을 타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다만, 얼큰하게 취한 상태의 선생은 타인이 자신에게 아는 척 말 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듯 했다. 하긴,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렇겠구나 싶었다.

낙원상가에서 육의전빌딩 사이 250미터 남짓 구간에 '송해길'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전의 시절 이야기다.

지방에서 갓 상경한 내가, TV 밖에서 연예인을 처음으로 마주친 순간 아니었나 싶다.

송해길은 환한 대낮보다는 어둑어둑한 밤에 찾는 게 더 매력있어 보인다.

낮의 송해길은 탑골공원과 이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탑골공원에서 보일 법한 어르신들을 송해길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의 식당과 술집에서 끼니를 해결하시거나 약주 한 잔 기울이며 수다를 떨고, 여가를 보내곤 한다.

하지만 밤이 되면 송해길을 찾는 사람들이 좀 더 다양해진다.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코로나로 인한 세계적인 봉쇄가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는 방증일까? 가끔 외국인의 모습도 눈에 띈다.

"순 노친네들 취향일 뿐인 이 거리에, 젊은 사람들이 왜 모이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른바 '레트로 감성' 같은 용어들을 굳이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물어본다. "노친네들이나 볼 것 같은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은,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MC였던 송해 선생은 어떻게 연령대를 불문하고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을까?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한 출연자들은 왜 선생을 '형'이며 '오빠'라고 불렀을까?

홍대며 연남동이며 이태원 같은 서울시내 젊은이들이 몰린다는 '핫'한 거리들... 그런 곳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착한' 가격과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옛스럽기에 더욱 신선하고 새로운 감성.

아마도 이런 것들이 '송해형', '송해오빠'를 연상시키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송해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곳을 젊은이들도 찾기 시작하게 된 거 아닐지.

돌이켜보면 송해 선생은 모두를 품었다.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불과 2달여 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 부문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있지만, 선생의 '전국노래자랑'만큼 따뜻하고 훈훈한 프로그램은 드물지 않았나 싶다. 최소한 나는 그런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도전자가 저조한 실력을 보여도, 그저 실로폰의 '땡!' 소리 한 번으로 끝날 뿐이다. 독설 같은 건 없다.

도전자가 무대 앞에서 긴장하는 경우도 드물다. 오히려 진행자를 보니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초로의 남녀는 물론이고, 20대 청년남녀도, 심지어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법한 아이들이 90대의 노인에게 '형', '오빠'라고 서스럼없이 부른다. 진행자는 이걸 즐긴다. 아니, 권장한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라기보단, 마을 잔치 중계를 보는 듯 했던 선생의 방송. 기사를 보고서야 깨닫는다. "아, '전국노래자랑'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었지, 참!"

선생이 품은 건 '전국노래자랑' 출연자와 팬 뿐만이 아니었다.

종로3가 낙원동 일대, 선생의 단골 식당으로 알려져 있는 곳은 한 그릇에 2500원 짜리(그나마도 2000원에서 최근 올렸다) 시래기국밥집.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어르신들과 낙원상가를 찾는 배고픈 젊은 음악인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국밥을 먹는 식당이다.

빈 자리가 나는대로 합석하는 식당. 송 선생도 예외는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송 선생은 종로3가에 모이는 모든 이를 품었다.

그래서였을까. 선생이 떠난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송해길 한 구석에 놓인 선생의 흉상 앞에는 많은 이들이 멈췄다 갔다. 사진을 찍기도 했고, 묵념을 하기도 했다.

젊은이와 어르신, 남성과 여성... 다양한 이들이 선생을 기억하는 모습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다양한 이들이 선생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선생이 품었던 사람들 만큼이나 다양한 이들이 송해길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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