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주는 위로] 사육신공원, 지친 후손들을 향한 조상님의 위로

하단비 승인 2022.05.05 17:19 | 최종 수정 2022.05.06 00:57 의견 0

노량진이라는 동네. 예나 지금이나, 팍팍하고 서러운 동네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이촌2동 지역... 예전엔 모래밭이었겠죠? 조선시대엔 거기서 사형 집행이 이뤄지곤 했대요.

노들나루에서 강 건너 사형장을 쳐다보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노량진 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요. '노들강변'. 민요처럼 들리지만, 사실 193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민요'라고 해요. 멜로디는 경쾌한 듯 보이지만, 가사를 보면 인생의 허무함을 담고 있지요.

사실 지금도 팍팍하고 서러운 정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노량진에선 지금 이 시간에도 20대 30대 청춘들이 '배수의 진'을 친 채, 저마다의 승부를 준비하고 있지요.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전투에서 승리해 웃는 얼굴로 노량진을 떠나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거에요.

그걸 알면서도, 이 살벌한 전쟁에 절박한 마음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젊은 전사들의 심정은 또 어떨까요?

어릴 적엔 수능만 끝나면 '공부 지옥'에서 해방인 줄만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은가 봐요.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게 또 하나 있네요.

외롭게 홀로 싸우는 젊은 전사들의 마음을 달래줄 만한 공간이 드물다는 거죠.

저렴한 술집이 몰려있고, 골목을 찾아보면 PC방이며 오락실 같은 곳이 나온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위로'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죠.

그나마 이 지역의 사실상 유일한 녹지인 사육신묘가 청년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는 듯 보입니다.

500년도 더 전에 서럽게 가신 조상이, 후손을 위로해준다니,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인 듯 해요.

조상님들의 품에 안기려면, 우선 문을 하나 지나야 합니다.

그 이름이 '불이문(不二門)'이네요.

"내가 모실 주군이 두 분일 수는 없다. 오직 한 분 뿐이다" 이런 의미겠죠?

이 문을 지나는 지친 청년들. 이런 생각이겠죠.

"한 분이든 두 분이든, 모실 주군을 만나라도 봤으면 좋겠어요!"

조상님들의 넋을 기리는 사당을 참배하고서, 곧바로 발걸음을 돌리지 말아요.

사당 뒷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봐요.

조상님들이 쉬고 계신 공간이 나오니까요.

전투에 지친 노량진의 후손들, 아니, 꼭 노량진이 아니어도 좋아요. 일에 치이고 삶에 지친 후손이라면 조상님들 앞에서 투정 한 번 부려봐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녹봉이나 만져보시고 가셨잖아요. 저는 그 녹봉 한 번 받아보는 게 소원입니다"

"할아버지! 저는 나름 주군 한 분만 모셨는데요. 그 주군이 절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주군 배신하고 우리 주군에게 붙은 녀석이 저보다 녹봉을 더 받더라니까요?"

그렇게 투정 부려도, 조상님들이 불호령을 내리실 것 같진 않아요.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손자·손녀들이잖아요. 아무리 꼿꼿하고 엄격한 성격이라도, 손자·손녀에겐 약해지는 게 할아버지들이지요.

조상님들과 헤어지고, 공원을 한 바퀴 둘러봐요.

조망이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아마 밤에 찾으면, 야경은 더 아름답겠지요.

다만, 흘러가는 한강물, 달려가는 기차를 보니 슬며시 몰려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어요.

짧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활짝 핀 꽃은 손자·손녀를 배웅하는 할아버지들의 마음인 듯 싶어요.

Travel Tip : 사육신공원을 찾을 땐,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해요.
입구 바로 옆에 주차공간이 있긴 하지만 소방서 차량, 해병대 봉사단 차량 등이 상시 주차돼 있어, 공간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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