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다] (12) 경주 황성공원, 산책 같은 여행과 여행 같은 산책

양혁진 승인 2022.04.03 19:39 | 최종 수정 2022.04.03 21:26 의견 0

'산책'. 일상과 여행에 모두 어울리는 단어다.

산책보다 더 나은 여행 방법이 또 있을까?

제 아무리 멋진 곳이라도 차 안에서 바라보며 스쳐 지나갈 뿐이라면, 직접 걸어볼 때와 온전히 같은 기분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기억에 남는 여행의 필수 조건은 현지인들의 일상을 직접 보고 느끼기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걷는 것'만큼 좋은 투자가 없다.

'투자'라는 거창한 발상을 하지 않더라도, 막힌 생각을 풀고, 몸 구석구석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산책을 한다면, 여행할 때와 흡사한 신선함을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칸트도 정해진 시각이면 항상 산책을 즐기지 않았을까.

"경주 사람들은 어디서 산책을 할까?"

여행객의 입장에서, 이런 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아무리 거주지가 경주라 하더라도, 불국사며 안압지, 대릉원 같은 곳을 매일 산책하진 않을 것 아닌가. 식후 소화가 필요할 때, 잠깐 걸으며 에너지를 재충전할 필요가 있을 때, 경주 현지인들은 어디를 찾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황성공원 아닐까 싶어, 찾아갔다.

도착하자마자 감탄사부터 나왔다. 빽빽한 소나무 숲과 잘 정돈된 오솔길.

다른 지역이었다면 꽤나 유명짜한 관광지가 됐을 만한데, 경주에선 지역주민들의 산책공간, 즉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아름드리 소나무 옆에 놓여진 공용 운동기구... 이게 바로 경주의 '클라스' 아닌가 싶다.

소나무 사이를 거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낮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지만, 잘 정리된 공원엔 숲이 우거져 덥지도 않다.

"그래 봐야 소나무 일색이잖아"라며 아쉬워할 여행객이 있을까? 그렇다면 여름 쯤에 다시 한 번 찾아오는 건 어떨까.

황성공원의 또다른 자랑, 맥문동이 활짝 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촬영=박혜란(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8월 쯤, 맥문동의 보라색 꽃이 만개하면 주민들도 어쩔 수 없이 관광객들에게 잠시나마 공원을 양보해야 한다.

굳이 황성공원의 '랜드마크'를 꼽는다면, 김유신 장군상과 충혼탑 정도일까. 하지만 이 두 곳은 굳이 열심히 둘러보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제주도에서 돌하르방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을 수는 없지 않는가.

역사의 흔적을 느끼려면 김유신 장군묘를 찾는 편이 훨씬 기억에 남을 것이다.

별도로 징수하는 입장료 같은 건 당연히 없다. 주차공간이 여유 있고, 도심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짜투리 시간을 끌어모아 가볍게 한두시간 보내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휴식을 위해 경주를 찾았다면, 한두시간만 머물다 떠나기엔 아깝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사방팔방이 '가볼만한 곳' 천지인, 경주에서만 할 수 있는 배부른 고민일까.

저작권자 ⓒ Travel Lif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