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낙산사에서 배운다...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3가지 비결

박재근 승인 2021.12.15 18:28 | 최종 수정 2021.12.16 10:09 의견 0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005년의 봄날이었다. 바닷가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특징 때문에 불자가 아닌 여행객에게도 사랑받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가 화염에 휩싸였다. 절집은 물론 초목까지 다 타버린 이 날은 얄궂게도 '민둥산을 푸르게 바꾸자'며 제정된 식목일, 4월 5일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처음 방문한 낙산사.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결심했지만, 실제로 다시 찾은 건 화마가 덮친 그 해의 12월, 한겨울이었다. 그 날따라 매섭게 몰아치던 바닷바람보다도, 잿더미가 된 낙산사를 접한 내 마음은 더 시렸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 때로부터 15년도 더 지났다. 세 번째로 찾은 낙산사는 아름답고 푸른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역시 낙산사는 좋구나"하며 경내를 계속 돌았다.

화마 탓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 낙산사. 참배하러 온 불자들과 '바다 옆 절집'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에게 한 가지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어쩌면, 낙산사는 가르친 적이 없는데, 내가 마음대로 배운 것일 지도 모르겠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3가지 방법'이다.

■ 어려운 상황일수록, 타인에게 더 베풀기

'잿더미'가 된 낙산사에서 인상깊었던 건, 낙산사 스님들과 보살님들의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추운 날씨에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당시 임시 처소에 계시던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학생, 날도 추운데 여길 다... 와서 불 좀 쬐고 가시지!"

불만 쬐러 갔을 뿐인데, 스님들을 통해서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던 기억이 난다. 스님들은 따끈따끈한 믹스 커피를 몹시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난롯불에 구운 가래떡은 겉은 바삭바삭 속은 촉촉, 전체적으로는 맛있다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따뜻한 대접을 받고 임시 처소를 나서는데, 이번에는 보살님들이 붙잡았다.

"어우, 처사님! 지금 국수 공양 중이거든. 여기서 잡숫고 가셔!"

이렇게 실컷 얻어먹었더니,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도 부른 배는 꺼지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국수 공양이 중단됐기에, 그 때 그 국수의 맛은 다시 볼 수 없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타인에게 베푸는 낙산사의 그 마음은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내에 소원지를 비치해놓은 사찰은 많다. 참배객들과 관광객들에게 자율적인 보시를 유도하며, 별도의 보시를 하지 않더라도 딱히 눈치를 준다거나 싫은 내색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낙산사는 아예 '무료'라는 글귀를 크게 써놓았다. 소원을 빌되, 부담을 갖지 말라는 안내문. 다른 사찰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해수관음상 옆에 심어진 나무들은 또 어떤가. 각 나무들 앞에는 어디 사는 누가 심은 나무인지를 모두 기록해놨다. "낙산사의 재건은 불자와 국민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타인에게 베풀고, 타인을 더 생각한 게 '다시 일어서는' 첫 번째 비결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 한 걸음 후퇴를, 두 걸음 전진의 계기로 삼기

'일출을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의미의 빈일루. 2005년 산불 직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건물이다. 조선 중기 박종의 기행문 '동경유록'과 만해 한용운의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 김홍도의 '낙산다도' 등 문헌상에만 기록돼있던 건축물이었다.

이 건물이 다시 들어선 건 잿더미가 된 낙산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였다. 어차피 복원하는 김에, 과거에 존재했었던 이 건축물을 문헌과 도면, 출토된 유물 등을 바탕으로 다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지금 낙산사를 둘러보면, 이 '빈일루' 외에도 '새 집' 느낌이 나는 건물들이 많다.

예컨대, 낙산사의 대웅전 격인 '원통보전'도 화재 이후 새로 지은 건물이다(낙산사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닌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절이므로, 주불(主佛)을 모신 법당에 대웅보전이 아닌 원통보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렇게 지은 건물들도 몇백년 후에는 역사가 될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문화재들도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등에 재건·중건한 것들이 많으니.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으로 향하는 길은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이 길 외에도 경내의 길들은 대부분 특별한 '테마'로 꾸며져 있다. 낙산사 전체가 훌륭한 '산책 코스'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한 걸음 후퇴했지만, 두 걸음 전진한다는 것. 이런 것일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긍정적인 마음 갖기

낙산사 한 구석엔 홍련암이라는 이름의 작은 암자가 있다.

예전에도 바다 바로 옆, 절벽에 지어진 절집이란 이유로 유명했지만, 화재 사건 이후엔 더 유명해졌다.

"화마조차도 홍련암은 피해갔다"는 이유다.

원통보전 앞 낙산사 7층 석탑도(탑 귀퉁이가 잘려나가긴 했지만, 이는 6.25 전쟁때의 일이다), 낙산사의 '랜드마크' 격인 해수관음상도, 이 곳들을 지키는 '사천왕문'도 화마에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그 모습을 온전히 지켰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터.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생각보다 약하구만"이라고도, "관세음보살의 가피 덕분에 이나마라도 지켰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낙산사 내부에서는 "이 만큼이라도 지킬 수 있었기에, 재건할 수 있었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역시, '세상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낙산사에도 스며들었나보다.

예상치 못한 문제 때문에 좌절했다면, 머리를 식히며 바다를 보고 싶다면, 동해 바다로 향하는 게 어떨까. 그리고 바다를 보는 김에 낙산사도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어떨까.

분명 낙산사는 생생한 가르침과 함께 위로와 격려를 전할 것이다. '다시 일어서는' 분야라면, 낙산사는 우리 모두의 선배일 테니.

TRAVEL TIP : 해수관음상 정면 맞은 편을 보면 웬 통유리로 덮인 사각 콘크리트 구조물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하면 이 유리를 가린 채 서 있지 않는 게 에티켓. 왜냐하면

관음상 아래에 있는 관음전의 구조가 이렇다. 별도의 불상을 모시지 않은 대신, 통유리창을 통해 해수관음상이 보이도록 만들어놓았다. 타인의 기도를 방해하는 건 분명 매너가 아니다.

7층 석탑과 관련, 동전을 던져 탑에 안착시키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관광객들 사이에 퍼져있는 듯 하다. 어째서 이런 소문이 돌게 됐는지는 불명.

낙산사는 재건 과정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도 이동하기 쉬운 환경을 구현했다. 경내 대부분의 구역에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를 설치했으며, 일부 구간에는 노약자나 어린이 등의 안전한 이동을 돕는 손잡이도 설치됐으니 참고!

저작권자 ⓒ Travel Lif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