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다] (10) 서울 서초동 몽마르뜨공원, 치열함 속 작은 쉼표 하나

선유랑 승인 2021.10.30 16:37 의견 0

우리 후손들이 역사 관련 자료를 펼쳐본다면, 2010년대 중후반과 2020년대 초반의 모습은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주인공 격이 될 인물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어떤 논조로 쓰여질 지는 감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장소가 주 무대가 될 것인지는 선명하게 보인다. 서초동, 그 중에서도 법조단지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 "2010년대 중후반에 발생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역사는 서초동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로 시작해 "이 무렵의 서초동은 이처럼 치열하면서도 살벌한 곳이었다" 이런 느낌의 문장으로 끝나지 않을지.

지금 기록하고 있는 이 글이 후대에까지 전승되면서, 또 하나의 역사 자료로 남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감히 한 줄을 추가하고 싶다. "치열하고 살벌한 역사의 무대가 서초동이었지만, 무대 뒤 한 켠에는 당시 사람들에게 쉼표 역할을 하던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노라"고.

■ 이제 갓 스무살...이름 없던 야산, '몽마르뜨 공원'으로

이 공간의 나이, 이제 갓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원래 이곳은 아까시나무가 우거진 그냥 평범한 야산이었다. 아니, 야산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그냥 동네 언덕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서초구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서울시가 배수지를 조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장소에 지역주민의 휴식을 위한 공간을 함께 마련하게 된다. 이렇게 몽마르뜨 공원이 탄생하게 됐다.

그렇다면 왜 하필 프랑스이고 '몽마르뜨'인가. 의외로 이유는 단순하다. 지척에 '서래마을'이 있다는 게 이유다.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다 보니, 근처 길 중에 '몽마르뜨길'이란 별칭이 붙은 거리가 있다. 거기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뭔가 강남의 '테헤란로'나, 여의도 '앙카라공원' 같은 거창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면 살짝 김이 빠지는 느낌이려나.

그러나 콘텐츠는 만들어 넣기 나름이다. 공원 내부에는 프랑스에 실존하는 명소 '몽마르뜨 언덕'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몽마르뜨에서 활동했던 고흐, 고갱, 피카소, 르누아르 등 예술가들의 조각상도 전시돼 있다.

■ 뜻밖의 토끼 천국...사람 보고도 겁 안내네

큰 마음 먹고 계획을 세워서 찾아오기보다는 법원 쪽에 또는 서초동 인근에 볼 일이 있다면 온 김에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가볍게 걷기 좋은 곳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눈에 띄는 표지판. 아니, '토끼를 보호해 달라'니. 이건 무슨 말이람.

실제로 토끼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꽤 많다. 이 녀석들, 사람을 보고도 그다지 겁내지 않는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의 다람쥐들마냥 쪼르르 달려와서 먹이를 받아먹거나 사람들을 곧잘 따라다니는 모습은 아니지만, 사람이 보인다는 이유로 피하거나 숨지는 않는다. 이런 도도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다만, 몽마르뜨공원이 처음부터 '토끼 천국'이었던 건 아니다. 10년 쯤 됐을까. 누군가가 이 공원에 토끼들을 유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번식하면서 이렇게 개체 수가 늘어난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이 곳에 토끼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가 토끼를 한두마리 유기하더라도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말하자면, 이 곳 토끼들은 원래부터 살던 야생 토끼는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사람 손에 컸던 녀석들이니, 사람을 보고 겁내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동물보호단체가 몽마르뜨공원의 토끼들에게 중성화수술을 하는 등, 자발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산책 나온 주민들의 반려견으로부터 토끼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많은 개체수 때문에 토끼들이 고통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어떤 이유에서든 '토끼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 장미꽃과 예술 조형물보다 더 인상 깊은 '여유'

이 '야산' 또는 '언덕'의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 다다르면(말이 정상이지 별로 힘들게 올라간 곳도 아닐 테다)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다. 프랑스와 몽마르뜨, 예술가 등을 상징하는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다. 그리고 그 조형물을 장미꽃들이 감싸고 있다.

그렇게 설치된 상징물들보다 오히려 더 눈에 띄는 건, 이 곳을 방문한 시민들의 여유로움이다. 어린 아이와 함께 산책 나온 어른들의 모습. 프랑스어로 적힌 안내문 앞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 서울 한복판에 이만큼 여유로운 쉼터가 또 있을까.

"그러니까 장미꽃이 피어있고 토끼가 뛰어다니며, 프랑스 말로 적힌 안내문이 설치돼 있으며, 하루종일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좋은 조용한 잔디밭이 서울에, 그것도 대법원 대검찰청 바로 옆에 있단 말이야? 그 말을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

글로 옮겨놓으니 신기하긴 하다. 자신 있게 답해주자. "있다고요!"

■ 반포대로 위의 높은 다리, 정체가 뭐냐면요...

반포대로 성모병원과 서초역 사이 구간, 서초경찰서 인근에 높이 세워진 이 다리. 자동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궁금했던 이 다리는 누에다리. 머나먼 옛날, 이 일대는 뽕밭과 잠업강습소가 있던 '누에 타운'이었다나. 그래서 다리 명도 누에다리라고 붙였단다.

누에상도 만들어 놨는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나. 믿거나 말거나.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야산 '서리풀공원'으로 이어진다. 몽마르뜨공원처럼 잘 단장된 느낌은 아니고, 그냥 평범한 동네 야산이다. 평일 낮에는 이 곳을 통해 법원 청사로 진입할 수 있지만 밤이나 휴일은 문이 막혀있으니 참고하자.

Travel Tip : 여행지라기보단 산책을 위한 공원에 가까운 곳이다. 별도의 주차 공간이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좋겠다. 내부에 매점이나 카페 등이 없으므로, 커피 한 잔 하며 산책하고 싶다면 인근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등으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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