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근의 행여나] DL 이해욱 '글래드호텔' 사건 1심...'추정'만으로 유죄라고요?

박재근 승인 2021.07.30 00:19 | 최종 수정 2021.07.30 01:10 의견 0
글래드호텔 여의도(사진=글래드호텔앤리조트 제공)

아마도 '대림산업' 또는 '대림그룹'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할 DL그룹. 건설과 정밀화학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이 회사는 2010년대 초반쯤, "관광산업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호텔 사업에 뛰어들었다.

호텔브랜드 '글래드(GLAD)'를 개발해 잘 운영해가던 DL그룹. 돌연, 법률 리스크에 부딪혔다. 총수인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혐의를 뒤집어쓴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계열사 간 부당거래를 통해 이 회장이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1심에서 이 회장은 벌금 2억원, DL그룹은 벌금 5천만원을, 자회사 글래드호텔앤리조트(옛 오라관광)은 벌금 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호텔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해욱 회장은 2012년 대림그룹과는 별도로, APD(Asia Plus Development)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APD는 '글래드'라는 호텔 브랜드에 대한 모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단, '글래드호텔'의 운영은 대림산업이 별도로 설립한 회사 오라관광이 맡아왔다. 여기까지는 대림 측과 공정위·검찰 사이에 이견이 없다.

글래드호텔 여의도(사진=글래드호텔앤리조트 제공)

쟁점은 APD라는 회사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공정위와 검찰의 판단은 이랬다. '글래드' 브랜드를 대림이 개발했는데, 이 브랜드에 대한 권리를 가로채기 위해 이해욱 회장이 APD라는 회사를 급조했다는 것이다. 이 회사가 대림 측으로부터 상표권 사용료, 컨설팅료 등의 명목으로 매년 수억원 이상을 챙겼고, 이는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엔 이 회장의 직접적인 지시 또는 관여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림 측 주장은 달랐다. APD가 '글래드' 브랜드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워커힐, 반얀트리 등 '내로라' 하는 정상급 호텔리어들이 합류해 팔을 걷어붙인 만큼, '페이퍼 컴퍼니'라는 공정위와 검찰의 주장은 부당하다는 것. 그리고 이 회장이 자신과 가족이 보유한 APD 지분 100%를 2018년 오라관광에 무상 양도한 만큼, 부당이득은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굳이 대림과 무관한 별도 법인을 만든 이유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 즉, '망해도 혼자 망해야지, 같이 망하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 1심 법원은 검찰 측 손을 들어줬다. 이해욱 회장이 대림산업의 사업계획과 오라관광의 거래행위를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다만, "그래서 왜 구속이 아닌 벌금형인가"를 설명한 재판부의 '양형 판단'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이 현실적으로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자신과 아들이 보유한 APD 지분 전부를 계열사에 무상양도해 위법상태를 해소했으며 ▲계열사 두 곳이 공정위 부과 과징금을 모두 납부했다는 이유가 열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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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누구든 유죄?

1심 판결에 대한 의문은 "업무를 지시할 위치에 있었다'는 표현에서 시작된다.

이해욱 회장에게 유죄 판단을 내리려면 ① 업무를 지시할 위치에 있었고 ② 그래서 실제로 부당한 업무 지시를 했다 ③ 따라서 그는 나쁜 사람이다 이런 순서로 논리가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판결은 "① 업무를 지시할 위치에 있었다"에서 곧바로 "③ 따라서 그는 나쁜 사람이다"로 넘어간다. 논리의 급발진이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말과 범죄를 '저질렀다'는 표현은 전혀 다른 표현이다. 굉장히 위험하고 부적절한 판결이다. '추정'만으로 유죄를 확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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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익편취 혐의가 인정되지만, 실제로 얻은 이익은 없다?

사익편취, 즉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는 법원 판단에도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이해욱 회장이, 또는 그 가족이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는 주장이 인정되려면 '글래드'라는 브랜드에 대한 권리가 대림 측에 있는데도 이를 부당하게 APD로 넘겼다는 점이 명확히 입증됐어야 한다.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면, 하다 못해 이 회장 일가가 APD 소유의 '글래드' 브랜드를 통해 이익이 얻은 사실이 있다는 점이라도 밝혀냈어야 한다. 그게 배당이 됐든 어떤 형태가 됐든 말이다.

하지만 "'글래드' 상표권 개발 주체가 대림"이라는 주장은 공판과정에서 명확한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정위와 검찰이 '주장'은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검찰 측이 협력사 직원의 이메일 등을 증거로 제출하긴 했지만, 결국 명확하게 입증되진 않았다.

이 회장 일가가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APD로부터 배당을 받은 사실도 없거니와, 소유했던 주식 전체를 오라관광에 무상으로 양도했다. 결국 이익이란 게 있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 법원도 판결문을 통해 인정한 사실이다. "이 회장이 현실적으로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라는 표현이 들어있으니.

"사익편취 혐의가 인정되지만, 현실적으로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와 유사한 논리구조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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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역도 무죄도 아닌 애매한 벌금형...욕 안 먹기 위한 '흑역사' 판결?

이처럼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문장들이 판결문을 채우고 있다. 판결문인지 '아무 말 대잔치'인지 구분이 안 된다. 심지어 '벌금 2억원'이라는 형량 마저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이 이해욱 회장에게 1년 6개월의 징역을 구형했다. 보통 이 경우, 실형이 선고되든, 집행유예가 나오든, 아니면 아예 무죄가 나오든. 셋 중 하나다. 그런데 느닷 없이 벌금형이라니. 뜬금 없는 결과다.

재판부가 어느 쪽에서도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한, 나름대로의 균형책을 짜낸 것 아닌가 하는 의심 마저 든다. 유죄에 대한 확신은 없는데, 그렇다고 집행유예나 무죄를 내리자니 비난 여론이 일 것 같고... 결국 벌금형에서 '퉁친 것' 아니겠느냐는 의심이다. 그렇지 않다고 믿으려 해도,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진=글래드호텔앤리조트 제공

이번 사건은 공정거래법상 '총수 사익편취 금지' 규정이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다. 재계와 법조계는 물론 학계의 관심까지 집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항소심으로 넘어갈 것이고, 주요 쟁점들에 대한 공방은 다시 진행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심에서 또 다툴텐데 뭐 어때'라고 넘기기엔 뒷맛이 너무나도 씁쓸하다. 특정한 법 규정을 처음 적용하는 사건의 첫 판결이다. 누군가가 남긴 첫 발자국은 다른 누군가에겐 역사가 된다. 그 역사가 이른바 '흑역사'가 된 건 아닌지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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