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6:44 (금)

[정지완의 '함께, 여행'] 무장애 여행, 그 프라하의 봄을 꿈꾸며

  • 기자명 정지완 칼럼니스트 (dhpd30320@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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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어머니 그리고 프라하의 봄

코로나19의 '장기 집권' 속에서도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일 년 열두 달 중 5월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달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가정의 달로서의 의미가 있을 것이며, 국가적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현재에 이르게 한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는 달이기도 하다.

여행 칼럼에서 갑작스레 민주주의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어 당황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과 관련 깊은 ‘장애인 이동권’을 포함, 장애인의 자유로운 삶 영유를 위한 다양한 사회적 화두들이 민주주의적 관점 없이는 논의될 수 없기에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내 어머니의 이야기’로 풀어 내어보려고 한다.

필자의 어머니는 ‘장애의 정도가 심한 지체장애인’으로 칠십 가까운 삶을 살아오고 계시는데 가끔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시곤 한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무지에 의한 괴롭힘을 당한 일화, 교사의 장애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할뻔한 이야기, 대학 시절 휠체어를 타고 대학로를 산책하다 걸인으로 오해받은 사연...

지금이야 실소를 머금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슬픈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그러한 아픔들을 그저 흘러간 에피소드인 양 편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작은 손을 그저 감싸 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재로선 凡人인 아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젊은 날의 어머니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가고 싶어 하셨다.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거닐었던 구시가지, 체코인들이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를 외쳤던 공간이자 탱크를 앞세운 소련군이 민중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말살하려 했던 슬픈 역사를 품은 바츨라프 광장 등을 비롯한 체코의 곳곳을 보고 느끼고 ‘걷고’ 싶어 하셨다.

이제는 그 순수했던 시절의 꿈을 내려놓으신 듯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장거리 비행과 같은 고된 여정을 감내하기엔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함께 동행’ 하자고 어린아이처럼 조르는 큰아들에게 하시는 항변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당신이 움직이는 것이 행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오늘도 어머니와 함께 가까운 산책로를 두 바퀴로 가는 휠체어 그리고 소녀 시절 어머니의 꿈과 함께 걸어본다.

■ 지체장애인, 소달구지 그리고 트럭

뜬금없이 지체장애인과 소달구지, 트럭에 어떠한 연결지점이 있기에 이를 작은 제목으로 달았는지 궁금해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필자는 장애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1983년 7월 무더운 여름날,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정으로 가는 길 위에 한 쌍의 신혼부부가 있었다. 신랑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신부의 휠체어를 밀면서 거친 비포장도로를 나아갔다. 잠시 멈춰서서 신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기도 하고 서로 힘들지 않냐며 다독이는 모습이 퍽 정답다.

잠시 후, ‘음머’하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았더니 한 노인이 소달구지를 타고 그들 곁을 지나고 있었다. 짚 모자를 쓴 노인은 신혼부부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어디까지 가시는교? 가는 길이모 내가 태아다 드릴까.” 더운 날씨에 지쳐있던 신랑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르신, 말씀은 감사한데 달구지에 휠체어가 들어가겠습니까? 괘안습니다. 고맙습니더, 어르신.”이라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신랑의 말에 아랑곳없이 노인은 신부에게 잠시 신랑에게 기대어 있어 보라며 휠체어를 달구지 위에 떡하니 실은 후, 신랑과 함께 신부를 번쩍 들어 폭신한 짚더미에 앉히고서는 소달구지를 천천히 몰아 포석정 근처까지 부부를 바래다주고는 훌쩍 자리를 떠났다.

이 노인이 부부에게 내민 대가 없는 손길이 바로 공자의 인(仁)이자, 석가의 자비심(慈悲心), 예수님의 이웃사랑이 아닐까. 또한,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에 대한 합리적 배려의 원시적 형태가 아닐는지.

또 다른 이야기는 25년쯤 세월이 흐른 후, 같은 도시인 경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녹음이 점점 짙어지기를 거듭하여 이제는 가을을 맞이하려는 듯 색동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초가을 무렵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한 호텔 로비, 장애 관련 모 학회의 행사 준비로 시끌벅적하다. 한 중년 부부가 복잡한 입구로 들어섰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는 양쪽으로 지팡이를 짚은 아내가 행여 넘어질세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곁을 따른다.

그런데 ‘아뿔싸!’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학회 관계자들이 끌던 끌차에 한쪽 지팡이가 부딪치면서 남자의 아내가 중심을 잃고 쓰러져 로비 바닥을 뒹굴었다. 학회에 참여한 대학원생들로 보이는 여성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호텔에 비치된 휠체어로 몸을 옮겨 다친 곳이 없는지 살핀다.

그때 학회 세미나장에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뛰어나와 끌차에서 쏟아져 내린 학회지들을 다시 정리하며 한마디 툭 던진다. “처음부터 휠체어를 탔으면 그런 일이 없지 않았나요?” 넘어졌던 중년 여성은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일이 늦어졌네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난다.

자, 여기까지는 그저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거니 생각하고 이해해보려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다음에 나올 말 한마디가 가관이다. “빨리 치우고 준비해. 나는 소아마비있는 저런 여자는 열 트럭을 갖다줘도 같이 안 산다.”

누군가는 너무 지엽적인 개인적 사례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장애인 당사자 그리고 가족들이 빈번하게 경험하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이다. 호텔사례와 같은 부정적 경험으로 인해 장애인들과 가족들은 여행을 기피하거나 두려움을 가지기도 한다.

‘휠체어와 소 달구지’ 이야기는 방법이 거칠기는 해도 장애인을 나름의 방식으로 배려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다음 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함과 분노, 슬픔을 느끼게 하고 당사자들로 하여금 무기력감과 모욕감을 가지게 한다. “장애와 함께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조차 가벼이 여겨져야 하는가?”

‘사람 사는 세상’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만의 ‘역린’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눈물 흘리고 화내며, 슬퍼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저항하기도 하고 투쟁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인간을 대함에 있어 적어도 넘지 않아야 하는 ‘선’이 존재한다. 의도했든 아니든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준다는 것은 업보(Karma)이다.

나의 어머니가 그리고 또 다른 장애인 당사자들이 비상식적인 처우와 인식으로 인해 ‘프라하의 봄’을 꿈꾸길 두려워하고 회피하게 된 것은 아닐는지 이제는 명확히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 필자 소개

정지완 칼럼니스트

- 장애인 당사자 가족- 前) 부산여대·호산대 외래교수- 前) 한국장애인개발원 대전센터 권익옹호팀장- 前) 대전가정법원 후견위원회 위원- 現) 장애인 교육·복지 연구자(대구대학교)- 現) 대전원명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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