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비양도’, 반나절에 즐기는 인적 없는 해안 산책로

양혁진 승인 2020.11.08 14:32 | 최종 수정 2021.01.11 13:36 의견 0

비양도는 제주에서 그리 알려진 섬이 아니다.

적어도 관광객 입장에서는 그렇다.

우도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가장 유명하고, 마라도는 국토의 최남단이라는 상징성을 가졌다.

가파도는 청보리와 자전거 타기에 가장 어울리는 섬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에 비해 비양도의 포지셔닝은 어정쩡하다.

​어쩌면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추자도나 차귀도보다도 지명도가 더 떨어질 정도다.

비양도는 조용히 산책하기 최적인 섬이다.

올레길을 비롯한 제주의 산책 명소가 한둘이 아니지만, 걷는다는 행위자체가 가서 끝이 아니라 돌아와야 함을 의미한다.​

여행의 본질도 마찬가지지만.

차라리 차 없이 여행을 한다면 걸을 만큼 걷고 멈춘 그곳에서 버스를 타거나 하면 되지만 대부분의 제주 여행자는 렌터카를 빌리기 마련이다.

실제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차를 세워둔 곳까지 콜택시를 불러 가 본적도 있지만, ‘노빠꾸’ 인생을 외치는 이들에겐 전혀 달갑지 않다.

다시 되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고 하지만, 그건 수사적인 표현일 뿐.

잠시나마 돌아오지 않을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멋지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비양도는 정말 좋다. 여유롭게 걷다보면 어느새 섬을 한 바퀴 돌아 출발지점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이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다.

크기도 적당하다. 한두 시간 이면 충분하다.

쉽게 말해 오전 10시에 배 타고 들어가면 12시나 1시에 나올 수 있다.

섬 중심부가 오름처럼 솟아있으며 해안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가기 안성맞춤이다.

​언덕은커녕 굴곡조차 거의 없는 문자 그대로 걷기만을 위한 섬인 듯 보인다.

물론 이 멋진 해안 풍경을 더 즐기려면 비양도의 중심인 비양봉을 오르면 되지만, 실제 오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날 비양도를 들어온 모든 이가 같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비양도의 해안길이 어떻게 인적이 없을 수 있는지 알려드려야겠다.

한림항에서 10-15분 배를 타고 내리면 적어도 20-30명의 동행자들이 함께한다.

비양도는 왼쪽으로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면 선착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배에서 내려 바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10여분 주변 경치를 즐기며 서성거리다보면 썰물처럼 사람들이 사라져 있다.

그때 움직이면 비양도는 나만의 인적 없는 산책로가 된다.

돌고 돌아 선착장이 가까워지면 먹거리가 보인다.

문어라면 가격을 보니 갈등이 생긴다.

관광객이었으면 ‘이런 섬에서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라는 말이 나왔겠지만,

한때 도민이었던 입장에선 자꾸 어디를 가건 현지인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버릇이 남아 있어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떠올려 보니 역시 먹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라면에 문어뿐만 아니라 미래에 곱씹을 추억까지 얹어주는 가격이니 결코 비싼 게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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