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무소유'와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

양혁진 승인 2020.10.08 19:56 | 최종 수정 2020.10.08 19:57 의견 0
 

"단 한번 부딪힌 한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내 사랑 백석>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길상사는 스토리가 꼬리를 무는 절이다.
사찰로서는 이제 불과 20여년의 연혁.

하지만 길상사 창건에 둘러싼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의 소실점을 찾게 된다.

바로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 기억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여름빛이 깊어지는 요즘 길상사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봄은 어떨까.

 

■ 길상화와 백석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70년대 장안의 유명한 요정이 있던 자리다. 이곳의 주인은 본명이 김영한이었던 한 여인.

그녀는 1916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생활고 때문에 기생에 입문한 신여성이었다.

그런 그가 22살 되던해 천재시인으로 불렸던 백석(본명 백기행)을 함흥에서 만나 대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시 윤동주 시인이 백석의 시집을 갖고 싶어  안달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만큼 시인으로서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짧은 동거생활이 이어지지만 일본 유학까지 한 엘리트였으며, 기자와 영어교사로 일하며 시를 썼던 백석과 그녀의 사랑은 이루어질수 없는 운명이었다.

일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부모의 강요로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백석은 그녀에게 만주로 같이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그녀는 백석과 그의 부모를 위해서 같이 가지 않고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백석에게 자야 라는 애칭으로 불리었던 이 여인의 그후 삶의 과정은 파란만장하다.남한으로 내려와 백석을 따라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대원각을 통해 거부가 되었고, 어렵게 일군 자산을 1980년대 후반 '무소유' 법정스님의 설법에 감동하여 당시 싯가 천억짜리 건물과 땅을 시주하고 나섰다.

70년대 밀실정치의 상징인 요정이 향기로운 사찰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그 꽃은 진흙이 전혀 묻어있지 않는다는 명제와 부합되는 절묘한 이야기다.

이쯤되면 이것이 실화가 아니라 소설이었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독자에게 버려졌을만한 이야기다.

 

20대에 짧게 만난 사랑이 평생을 지배한다는 스토리를 요즘 시대에 누가 믿을만 하겠는가.

게다가 그들은 1939년 헤어진후 만나기는 커녕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백석은 월북작가라는 멍에 아래 1988년 해금전까지 그에 대한 연구는 커녕 소식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백석은 월북작가가 아니다, 그의 고향이 북한이었을 뿐이다.

 

■ 효봉스님과 법정스님

 

알려진대로 법정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은 그의 스승인 효봉스님의 영향이 컸다.

그는 일제 강점기하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였지만,인간이 인간을 심판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출가를 하게 된다. 그가 입었던 옷을 팔아 엿판을 구해 3년을 전국을 떠돌아다닌 것은 유명한 일화다.

출가라는 것 자체가 속세를 버리고 떠남을 의미하지만, 효봉의 버림과 청빈은 그의 제자인 법정스님을 통해 일반대중에게 그대로 전파되었다.

효봉스님은 평소 낡은 비누 한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것 하나면 됐지, 두개가 왜 필요해"라고 일갈하셨다고 한다.

자야(김영한)가 대원각을 시주하기전 법정스님의 영향을 받았다면, 법정의 스승이었던 효봉스님의 가르침을 떠올려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진영각에 앉아 시간의 흐름을 느끼다

 

40대 초로의 여자가 길상사 진영각 툇마루에 오래도록 앉아있다.

명상인가, 수행인가. 진영각 내에 비치된 스님의 유품과 유언 등을 훑어보고 나와 마당을 한바퀴 돌고 나온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다.

법정스님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지만 모두들 말이 없다.

침묵의 공간.

길상사 진영각은 말없이 앉아있기에 너무도 어울리는 곳이다. 지금처럼 가을에는 길상사의 꽃이라 불리는 '꽃무릇' 이 한창 피어올라 운치를 더한다.

 

법정스님의 유골을 모신 함도 눈에 띄는 표시없이 진영각 뜰에 안치돼 있다. 미리 알고 오지 않는다면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길상사의 숨은 재미 하나는 절 곳곳에 숨어있는 스님의 말씀 찾기다.

꽃이나 나무가지를 꺾지 말라는 주의말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면 스님의 말씀이 숨어있는 식이다.

 

법정스님은 길상화 김영한의 기증의사를 접하고도 그 뜻을 물리쳐왔다.

결국 1995년 10여년이 지나서야 그 뜻을 받아 조계종 송광사 말사로 등록하게 된다.

2010년 이곳 길상사에서 입적하신 스님은 그 자신이 시주받아 창건한 절이지만, 1년에 한두번 법회외에는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주지스님 같은걸 맡아본적이 없다. 그는 무소유다.

 

길상화 김영한도 이곳 길상사에서 1999년 세상을 떠나며 "내 모든 재산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 해. 나 죽거든 눈 오는 날 길상사 뒤뜰에 뿌려 달라'는 말을남긴다.
백석은 북에서 이미 1995년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그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01년이 되어서였다.

 

TRAVEL TIP :  길상사는 홀로 명상할수 있는 침묵의 집이라는 공간을 두고 있다.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하루쯤 마음을 치유하기에 더할나위 없다. 며칠씩 시간이 된다면 템플 스테이를 신청해도 좋다.
 
찾아가는 길은 4호선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절 입구까지 도착할수 있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부터 걸어서 찾아가는 길도 대사관과 아기자기한 커피숍과 갤러리등이 어우러져 나쁘지 않다.

무릎이 괜찮다면 걸어갈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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